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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높이만큼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보았다. 


비둘기는 바닥에서 먹을 것이라도 찾고 있었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길 한 구석에서 우회전해 나온 큰 SUV 하나가 골목길치고는 빠른 속도로 그 비둘기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도시의 비둘기들이 늘 그러하듯 빠른 속도로 총총걸음을 해 자동차를 피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바닥에서 기껏해서 20cm 정도의 높이로 푸드득 날아 도망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빠른 걸음으로는 피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비둘기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는데 자동차를 피한 뒤에도 한참을 날갯짓하더니 결국에는 길가에 있던 전봇대의 높이만큼 솟아올랐다. 아마도 많이 놀라서 초(超) 비둘기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이었을까. 


살이 잔뜩 오른채로 도시를 배회하는 닭둘기의 이미지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비둘기가 싫어졌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비둘기는 그다지 싫지 않은 생물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세상에 나온 것은 90년대였는데 그때부터 이미 밴드의 멤버들은 비둘기를 싫어했던 걸까. 비둘기를 쥐의 레벨로 전락시켜버렸으니. 아니, 난 당시에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때에도 어른들은 비둘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5집인 [가장 보통의 존재]로 언니네 이발관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밴드의 모든 앨범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다. 5집이 나오고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6집이자 마지막 앨범을 발매한 지금 그의 데뷔 앨범을 듣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꽤 옛날이라고 부를 만한 96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기타 사운드를 낼 수 있었다니, 감탄하면서 노랫말에 빠져든다.   


시간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일이란 건 다 그래.

이번에 또 한번 기대를 걸어 보네- 너에게. 너라면 언제나 변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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