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던 것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번 겪어도 늘 처음인마냥, 어딘가에서 본 이별의 몇 단계를 필연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것일까.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이 나온지도 한 달이 더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이별'을 완전히 수용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한 것 같다.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의 발매를 기다리는 동안은 마지막 앨범이라는 아쉬움보다는 음악 자체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 홈페이지의 일기에서 다음 앨범에 대한 실마리가 언급될 때마다 "오오.. 이제 곧 나오는건가"하고 잔뜩 기대하고 또 그 뒤의 기약 없는 기다림에 다소 실망하는 과정을 여러번 겪고 나서는 마지막 앨범이든 뭐든 일단 음악부터 좀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검정치마의 [Team ..
삶에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척 중요하다. 밴드 라이프 앤 타임이 그의 노래 '유니버스'에서 "우리의 입장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한 것 처럼 말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삶과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생각과 행동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 와서 조립하려고 할 때도 뭔가 억지로 맞춰진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잠시 멈추고 설명서를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방향을 착각했을 확률이 높다. 자연스럽게 조립되도록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고심해서 만들어 놨을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런 태도를 가지려고 한 지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반'이라고 하는 앨범과 피치포크가 극찬하는 음악이 꼭 내 것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라디오헤드의 새 앨범을 들을 때 그것..
웨스톤(Westone)사의 이어폰 몇 가지를 청음해 보기 위해 청담동에 있는 청음샵 셰에라자드에 방문했다. 나는 음향기기에 수백, 수천을 투자할 만큼의 오디오필은 아니지만(그럴 여유도 없다) 기본적으로 좋은 소리를 내주는 기기에 대해 관심은 많은 편이다. 지금보다 예산이 더 부족했던 대학생 시절에도 이어폰을 하나 사기 위해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검색해 보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골든이어스와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측청치를 쳐다보다가 결국은 포기를 하고 디씨인사이드의 이어폰, 헤드폰 갤러리(이헤갤)에 들어가서 어떤 이어폰이 가성비가 가장 좋은지를 찾아보고 구입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거지만 주파수별 응답 곡선이라든가 플랫(flat)한 사운드라든가 하는 것이 오디..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랄지 감성같은 것인데, 밤 늦은 시간에 승객이 많지 않은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아 집으로 가다 보면 알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지곤 했다. 낭만과 불안이 뒤섞인,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는데 그 기분은 차선 건너편에서 마주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며 더 강화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 알지 못하는 도시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종류의 경험이라 그랬던 것 아닐까 싶다. 사실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 무드를 활용하여 공상이나 사색에 잠길 때가 많았다. 지금은 밤에 버스를 타도 별다른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 때의 나는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20대 중반 이후에 알게 된 벨 앤 세바스찬(Belle ..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20대 초반 군생활을 하던 때였는데 내무실에 놓여 있었던 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소설인데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그러한 호기심이 독서의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소 불순한 동기로 읽기 시작한 책은 놀랍게도 내 20대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책이 되었다. 전역하기 전까지도 여러 번에 걸쳐 읽었고, 책에 나오는 위태롭고 허무하지만 낭만적인, 그렇게 뒤섞인 감정이 이야기에서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2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감정들이 많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젊은 날에 그 이야기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30대를 시작..
방에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스피커가 있다. 음향기기 매니아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별볼일 없는 스피커일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름 적당한 돈을 들여 구매한 것으로 꽤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저녁 시간 이후에는 스피커의 볼륨을 키우기가 곤란하므로 퇴근 후의 시간에는 속시원히 볼륨을 올려보지 못했다. 지금은 낮에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으므로 원하는 만큼,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볼륨으로 음악을 감상하곤 한다. 볼륨을 한 칸 올리면 훨씬 좋아지는 음악들이 많다. Two door cinema club의 1집 [Tourist History]를 방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로 들어보니 꽤 만족스럽다. 이어폰으로 들을 때도 좋았지만 스피커로 들으니 역시 다른 맛이 있군, 하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친구가 전달해 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대한 자료를 보았다.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에 지구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의 이름이라고 한다. 사진의 이름이 창백한 푸른 '별'이 아니라 '점'인 것은 제목 그대로 사진에서의 지구는 아주 작은 하나의 점으로만 나타나 있을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구의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주 멀리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이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종종 떠올리는 문장이지만 사진으로 보니 그 사실은 새삼 새로워진다. 그 작은 점조차 나에게는 거대한데 나는 그 점의 표면의 아주 티끌같은 공간을 하나 차지한 채 먼지처럼 앉아 있다. 나는 훅 하고 부는 바람에 쉽게 날아가버릴 정도로 미약한 존재이다. 별이라고 하면..
살아가면서 늘 스스로에게 주지시켜야 하는 것들 중 하나는 속물적인 인간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의식적인 자각 없이는 세속주의에 젖어들기가 쉬운 사람인 것 같다. 이때쯤이면 스스로에게 경고를 한번 날려줘야하는데 그 순간을 놓치고 일상의 관성에 몸을 의지하다 보면 속물적인 엔트로피가 자각하지 못한 새 많이 늘어나 있는 것이다. 세속 게이지가 너무 많이 증가했다고 알아차릴 때면 잽싸게 수술용 장갑을 끼고 메스를 들고 마음을 절개하여 수리해야 한다. 이번에는 Sigur Ros의 [Takk...] 앨범을 오랜만에 듣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 증상은 꽤 중증인 것 같아 보여 음악을 그냥 틀어놓는 것으로는 안되겠다. 차분하게 의자에 앉아서 집중해서 첫 번째 트랙부터 꼼꼼하게 들어 볼 테다. 절개하..
지대넓얕의 공식 힐러인 김도인님의 명상 수업을 신청해두었다. 명상에 관심을 가진 뒤로 아주 적극적인 태도는 아니었지만 명상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모로 알아보던 터였다.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의식에 대한 탐구라든지 스트레스의 감소라든지 하는 것들을 들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위로가 필요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진 않지만,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방어막을 쳐 보지만 내가 차마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간 마음의 어떤 한 부분은 위로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말이 담을 수 있는 내용은 몹시도 제한적이다. 적합한 단어들을 떠올려 봐도 그 단어들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많은 의미들을 나는 어쩌면 놓치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음악을..
전봇대 높이만큼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보았다. 비둘기는 바닥에서 먹을 것이라도 찾고 있었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길 한 구석에서 우회전해 나온 큰 SUV 하나가 골목길치고는 빠른 속도로 그 비둘기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도시의 비둘기들이 늘 그러하듯 빠른 속도로 총총걸음을 해 자동차를 피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바닥에서 기껏해서 20cm 정도의 높이로 푸드득 날아 도망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빠른 걸음으로는 피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비둘기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는데 자동차를 피한 뒤에도 한참을 날갯짓하더니 결국에는 길가에 있던 전봇대의 높이만큼 솟아올랐다. 아마도 많이 놀라서 초(超) 비둘기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이었을까. 살이 잔뜩 오른채로 도시를 배회하는 닭둘기의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