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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Coldplay, [Parachutes]

Antwort 2017. 7. 4. 12:43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20대 초반 군생활을 하던 때였는데 내무실에 놓여 있었던 <상실의 시대>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소설인데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그러한 호기심이 독서의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소 불순한 동기로 읽기 시작한 책은 놀랍게도 내 20대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책이 되었다. 전역하기 전까지도 여러 번에 걸쳐 읽었고, 책에 나오는 위태롭고 허무하지만 낭만적인, 그렇게 뒤섞인 감정이 이야기에서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2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감정들이 많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젊은 날에 그 이야기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30대를 시작하는 지금 돌이켜보면 <상실의 시대>를 내 20대의 책 한 권으로 규정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후로도 하루키를 많이 읽었다. <상실의 시대> 이전에 쓴 쥐가 등장하는 시리즈라든지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를 비롯한 비교적 나중에 쓴 책들까지. 대부분 인상깊게 읽었지만 <1Q84>이후로는 읽지 않았다. 그 책은 사실 중반부까지만 읽고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책의 스토리는 흡인력이 있고 재미있었으며 글에 등장하는 비유도 참신하고 글도 아주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왠지 내가 좋아했던 하루키가 아닌 것 같다, 라는 이상한 느낌에 책을 더 읽지 못하게 되었다.


Coldplay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하루키에 대한 생각과 꽤 유사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밴드 중 하나이고, 그리고 여전히 곡을 멋지게 잘 쓰고 있다. 1집 이후 창작력이 고갈되는 밴드도 있지만 콜드플레이는 앨범을 거듭 내면서 하루키처럼 점점 세련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1집 <Parachutes>에 잔뜩 묻어 있던 '콜드플레이스러움'은 지금은 많이 없어진 느낌이다.


감동적이었던 내한 공연을 기억하며 <Parachute>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 보는 중이다. 'Yellow'를 연주하다 곡을 잠시 끊어 버리고 세월호를 위해 가졌던 침묵의 시간도 떠오른다. 기타 소리와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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