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랄지 감성같은 것인데, 밤 늦은 시간에 승객이 많지 않은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아 집으로 가다 보면 알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지곤 했다. 낭만과 불안이 뒤섞인,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는데 그 기분은 차선 건너편에서 마주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며 더 강화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 알지 못하는 도시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종류의 경험이라 그랬던 것 아닐까 싶다. 사실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 무드를 활용하여 공상이나 사색에 잠길 때가 많았다. 지금은 밤에 버스를 타도 별다른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 때의 나는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20대 중반 이후에 알게 된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If you're feeling sinister] 앨범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밤에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옛날의 그 기분이 떠오른다. 멜로디가 그 감성을 닮은 것일 수도 있고 이들의 음악이 대학생같은 기분을 담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If you're feeling sinister]는 벨 앤 세바스찬이 두 번째로 낸 정규 앨범이고 앨범의 자켓은 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가 떠오르는 붉은색이다. 이들의 정규 앨범들은 커버 사진의 색들이 독특해서 기억하기 쉽다. 회색(흑백),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이런 식이다. 데뷔 앨범(흑백앨범)인 [Tigermilk]는 독특하게도 대학교 졸업 과제의 일환으로 제작된 앨범이라고 한다. 졸업 과제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은 리더인 스튜어트 머독의 천재성을 떠나서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졸업 논문을 쓸 때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면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벨 앤 세바스찬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밴드인 것 같다. 다른 블로그의 포스팅을 읽어보면 분명 좋아하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있는 것 같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아 보였다. 읽은 글에 따르면 이들은 음악의 순수성이 비즈니스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이런 음악들을 만들 수 있다면 돈을 벌어보려 이런저런 궁리를 했을 텐데, 이런 생각들도 참 존경스럽다. 


만약 내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면 해가 진 후 사람들이 와인을 따기 시작할 무렵부터 [If you're feeling sinister]를 틀고 싶다. 지금 일하는 가게에서는 저녁에 종종 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을 틀곤 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어떤 날에는 벨 앤 세바스찬을 틀어야 할 것 같은 날도 있다. 사장님께 조심스레 건의를 해 볼까, 고민된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