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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겨울이었다. 앨범의 발매 연도가 2007년이니 실제로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시간이 꽤 흐른 다음에 알게 된 것이다.


애플 뮤직의 추천 리스트에서 앨범을 발견하고는 첫 번째 트랙부터 쭉 들어보았는데, 세 번째 트랙인 Skinny Love의 멜로디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상 그 정도의 감상을 끝으로 이런 앨범이 존재한다는 것만 머릿속 한켠에 담아두고 넘겼다. 


그 이후에도 Bon Iver라는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Skinny Love는 왠지 종종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어 찾아서 들어보곤 했다. 


한 음반이 개인에게 소중한 것으로 자리잡는 과정은 저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앨범은 첫 만남부터 강렬하다. 마치 날 위해 만들어진 음악처럼 나의 취향 중추를 자극한다. 그리고 어떤 음악은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한히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For Emma, Forever Ago]는 나에게는 느린 앨범 중의 하나였다. 웹사이트 등을 통해서 이 음반의 감상평을 찾아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이 힘들어진 순간에 위로가 된 음악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도 마음이 힘들어진 시기에 이 음악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하나로 기억하게 되었다. 


Bon Iver라는 밴드명을 가지고 있지만, 이 밴드의 출발은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 혼자였던 것 같다. 연인과의 이별이라는 커다란 개인사의 비극을 맞이한 버논은 오두막에 틀어박혀 그가 가진 최소한의 장비로 [For Emma, Forever Ago]의 녹음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뒤로 나는 이 앨범을 오두막 앨범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음악 애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음악도 듣고싶지 않은 순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거나, 깊은 고민 때문에 기분이 바닥을 칠 때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가도 금세 꺼버리게 된다.


버논도 오두막에 틀어박혀 있을 당시에 이와 유사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말하자면 [For Emma, Forever Ago]는 어떤 음악도 듣고싶지 않은 사람이 만든 음악이다. 장비가 초라하여 녹음의 퀄리티도 그다지 좋지 않고 귀를 자극하는 다채로운 사운드도 없다. 두 번째 트랙인 Lump Sum의 마지막 부분에는 마치 무언가 고장난듯 반복되는 기타 소리도 들린다. 


그만큼 이 음악들은 자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일상의 기분으로 들었을 때는 그저 듣고 넘기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힘든 순간에 함께해 준 친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바닥에서 곁에 있어준 기억으로 늘 소중하게 듣게 되는 음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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