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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명상 수업을 위해 삼성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인스타에서 사진으로 본 명상센터의 모습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며 다소 혼잡한 퇴근 시간대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금방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자메시지로 안내 받은 주소의 건물을 찾아가 4층으로 올라갔다. 센터 내부는 온통 흰색으로 센터 바깥과는 문 하나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깨끗한 실내 때문인지 공기도 상쾌한 기분이었는데 둘러보니 발뮤다 공기청정기(이것도 흰색이다)가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었다.


데스크처럼 보이는 장소에는 흰색의 도복을 입은 두 명의 직원이 접수를 도와주고 있었다. 수업 첫 날이라 수업료를 결제해야 했다. 앞으로 두 달, 무언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등록을 했다. 수강 규정을 읽어보니 8회 수업 중 절반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잔여 수업에 대한 환불이 가능한 것 같았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중간에 드롭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가볍게 읽어보고 패스. 


명상을 하는 장소로 들어갔다. 서른 개 정도의 아이보리에 가까운 흰색 좌식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제일 앞쪽 줄은 비어 있었고 먼저 온 사람들은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자리와 자리 사이의 간격은 꽤 넉넉한 편이어서 어딜 앉든 괜찮을 것 같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앞에 놓인 작은 종이가방을 확인해 보았다. 교재와 인센스 스틱(향), 티슈와 화과자가 들어있었다. 도인님의 설명에 따르면 인사이드 무비 명상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때 티슈를 사용하면 되고, 배가 고픈 상태에서는 명상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 배가 고프다면 키트의 과자를 섭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교재에는 앞으로 8주간 배울 내용이 적혀 있고(간단하게 적혀 있어서 여백이 많다), 인센스 스틱은 집에서 명상을 할 때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늘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원래 명상이 어렵기 때문에 향을 피움으로써 공간의 분위기가 전환된다는 것이다.


좌식 의자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면서 문득 내가 왜 명상 수업을 받고자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수업을 앞두고 목적을 까먹다니 참 멍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명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지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때로 삶에 찾아오는 불안을 컨트롤하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근데 오늘은, 그리고 최근 며칠은 불안한 기분이 없었는데 나에게 명상이 꼭 필요한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에라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생각을 지워 버렸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정면의 벽에 있는 큰 창을 통해 선릉과 정릉의 초록빛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이 동네의 빌딩들이 보였다. 마음이 편해지는 풍경이었다. 물론 저 건물 속의 사무실 풍경은 이곳과는 꽤 다를 테지만 말이다. 


도인님의 자리는 그 큰 창문 앞에 있었다. 바닥에서 조금 올라간 높이로 사각형의 단이 있고 그 위에 좌식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도인의 포스를 풍기며 등장한 김도인님은 자리에 앉아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로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개괄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호흡 명상, 그리고 인사이드 무비-'기쁨'을 하는 날이다. 


좌식 의자는 생각보다 기능이 좋은 편이어서 180도로 펴서 누울 수도 있는데 첫 번째 호흡 명상은 누운 자세로 진행되었다. 나는 전날 잠이 충분했으므로 졸음이 오진 않았지만 분명히 잠드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호흡 명상은 집에서도 몇 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좀처럼 수 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혼자서 할 때는 그렇게 집중이 어려웠는데 수업에서는 15분의 명상 시간이 주어졌다. 누워서 하는 거라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배꼽 주변에 주의를 집중해 보았다. 내가 집중하려는 곳 이외의 장소로 주의가 가끔 이동하곤 했지만 그것을 '알아차림'하고는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여러 번을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내가 충분히 길게 집중을 유지한 시간이 몇 초 정도일까가 궁금해지는 순간에 명상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할 때랑 확연히 다른 것은 시간이 확실히 빨리 흘러갔다는 것이다.(졸지 않았다)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인사이드 무비 명상을 시작했는데, 눈을 감고 기쁨과 관련된 기억을 열심히 들추어내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인사이드 무비는 감정 노예 상태에서 감정 이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슬픔이나 미움 같은 감정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으니 그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지만 기쁨의 감정에 대해서 명상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거의 기쁜 기억을 꺼내보다 보니 웃음이 나긴 하지만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의미 외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질문을 하려 했지만 이미 다른 질문을 하나 한 터였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을 듣다 보니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첫 번째 명상 수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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