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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 [미스터 노바디 Mr. Nobody]를 보았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이제는 다소 식상해진 아이디어를 이렇게 흥미롭게 들려줄 수도 있구나, 역시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력하다. 뭐, 보다 더 깊은 철학적 함의가 숨겨져 있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의 리뷰는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의 나를 규정한다. 우리의 경험은 대부분 선택적이다.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선택은 내 것이 아니었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과거의 사소한 선택 하나가 내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지 못한 그 인생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지 못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만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리프레쉬 마인드 2주차 수업에서는 바디스캔과 더불어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통감정사(苦痛感情思).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감각(몸),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몸의 감각이 느껴진다. 당황스러운 일이라면 호흡이 가빠진다든가 하는 것처럼.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도 느껴지고 그 경험에 대해 (언어적으로) 생각도 하게 된다. 삶에서 괴로움을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없듯이 감정사 세트는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 가야 할 동반자와 같은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이나 감각을 무시하는 태도로는 삶을 온전히 느끼기가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내가 겪었던 감정사 세트 하나는 독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또 다른 경험의 감정사 세트와 자동적으로 연합하게 되는데 이러한 연합 반응은 내가 원하지 않는, 다소 삶에 부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출근길에 급하게 뛰어 호흡이 빨라졌을 뿐인데 갑자기 슬픈 감정이 든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실질적인 인과관계와는 관련이 없으므로 과거의 감정사 세트를 하나하나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호흡이 가빠지면 그저 호흡이 가빠진 것일 뿐이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가 "초조해하지마. 나는 그저 배가 고플 뿐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출생부터 현재까지 내가 겪어왔던 수많은 감정사들을 되짚어 보고 이해하기 위해 인사이드 무비 명상이 도움이 된다. 과거를 마치 영화처럼 꺼내어 감상해 보는 것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몸의 감각, 감정, 생각들을 함께 느껴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각각의 감정사들을 독립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호흡곤란은 슬픔과는 사실 관련이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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