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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인 8주차에는 죽음 명상에 관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죽음을 떠올리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조건을 붙이지 않게 된다,

라고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다. 내 머리는 그것들의 중요성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아마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돈, 인간관계, 스트레스 관리 등과 관련한 것들. 

그러나 죽음을 상정하는 순간 그것들은 다만 공허해질 뿐이다. 삶에서 조건적으로 중요성을 부여받은 것들은 죽음 앞에 그 중요성을 즉시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무조건적으로, 그냥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가.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자리에 앉아 죽음을 명상해볼 필요가 있다. 


죽음 명상은 그 과정에서 졸음이 많이 수반되고 특히나 여럿이서 함께 명상하는 이 곳에서는 잠들어서 코를 골거나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므로 김도인 선생님은 이번 명상에서는, 지금까지의 수업과는 예외적으로, 명상 중에 조는 사람들을 찾아가 옥수수를 털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명상 중에 의식의 단절을 경험했다. 


어이가 없게도 그냥 잠들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명상이 끝나있었다. 옥수수가 털리지 않은 것을 보니 다행히 코는 골지 않은 것 같았다. 


수업에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피곤해서 잘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날에 오히려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은 날 잠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명상 뿐 아니라 삶 자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놓아버리기를 배웠으니 후회의 감정은 그냥 저 멀리로 보내버렸다. 



죽음 명상은 며칠 뒤 집에서 다시 해 보았다. 

구체적인 심상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2070년쯤을 상정해 보았다. 

내가 느낀 것은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감정이었다. 

인생의 허무에 대해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자극이었다. 공허감, 공허감.. 그것이 논리가 아닌 실제의 감정으로 느껴졌다.


그러한 감정으로 나의 최근 상황을 돌이켜 봤는데, 

막 떠오르는 것은 퇴사의 경험이었다. 


웃긴 것은 퇴사를 하지 않고 직장을 쭉 다니는 삶, 그러니까 내가 그토록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그 인생이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반대로 지금처럼 계속 산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보니 그것도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죽음을 생각하니 그랬다.


그러니까

두 가지의 삶이 딱히 서로 간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똑같이 허무했다.


아니 그럼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혼란스러워진 나는

본능인지 그 동안의 명상 훈련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호흡으로 되돌아왔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다시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리고 허무함보다는 나를 지금 여기(Here and now) 붙잡아 두는 호흡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틱낫한 스님의 글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 입 속에 있는 오렌지를 먹자. 


의식의 이상한 흐름으로 김도인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었던 책도 떠올랐다. 

50미터 달리기를 하면서, 기록을 재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옆에 있는 바다에 뛰어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멤버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을 그저 있는 그대로 긍정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이 '긍정'은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긍정적 삶의 태도와는 꽤 다른 것임을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오늘 저녁에도 아르바이트 가서 설거지를 열심히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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